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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전처 이민아 이혼이유

김한길 재혼 최명길 러브스토리

 두 번의 이혼, 아들 잃고, 끈질긴 암과의 사투세상을 울린 파란만장했던 삶

이어령 전 장관 딸 이민아 변호사(목사), 목숨건 사랑도 끝이 있었다.

 김한길 전처 이민아

2014315일 이민아 목사(53)가 세상을 떠났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장관을 무릎굻게 만든 딸. 큰아들의 죽음, 작은 아들의 자폐를 겪으면서 청소년 사역에 헌신한 이민아. 갑상선암, 망막 박리에 이어 위암 판정을 받고도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소망의 빛을 전하고 싶다며 죽기 직전까지 사역자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보는 데 사용하며 땅에서 하늘처럼살던 그가, 땅의 일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 이민아 변호사(목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하고 죽을 만큼 사랑한 남자, 김한길 전 국회의원과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저는 참 말을 잘 듣던 아이였어요. 마음이 약해서 반항을 못했어요. 그런데 언젠가는 아이가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때의 진통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기가 힘들 만큼 마음이 약해서 자신의 영역을 설정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문제였던 거죠. 제가 처음으로 제 의지대로 했던 것이 바로 남편을 선택하는 일이었죠.”

 

김한길 전처 이민아

가진 것 없는 학생 부부의 생활은 빠듯했다. 당시에는 유학생의 공식적인 취업이 금지되던 때라 남들이 다 꺼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은 고되기만 했다.

 


그 와중에 첫째 아들 유진이가 태어났고, 이민아는 아이를 키우며 헤이팅스 로스쿨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김한길 전처 이민아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도 제가 한 선택이 잘한 것이라는 걸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힘들다는 사실조차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저를 밀쳐내신 게 아니라 제가 아버지를 밀쳐내고 떠나왔던 거더라고요.”

 



<이민아 김한길 이혼, 아들의 죽음, 이민아 변호사 다시 태어나다 >

김한길

4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이혼 할때까지 아버지에게 투정 한 번 안 하던 이민아는 이혼하자마자 아버지 앞에서 무너져내렸다고 한다.

결국 아버지를 망신시킨 딸이 된 것 같아 무척이나 괴로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혼하고 돌아온 딸에게 화를 낼 줄 알았던 아버지는 애가 말랐다. 밥 좀 먹여라는 말로 마음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때 이민아 변호사는 자신이 지금껏 아버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수년간 쌓여왔던 오해와 거리감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이혼 후 이민아 변호사는 학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이를 헤이팅스 로스쿨에 부속된 탁아소 겸 학교에 맡겨놓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김한길 이민아 이혼사유

이민아 변호사는 본인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보니 편두통, 위궤양, 요통, 불면증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유진이가 16세가 됐을 무렵 아이도, 이민아 자신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아이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기까지 1년간 요란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 외에는 늘 긍정적이고 밝았던 아이.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IQ 159의 똑똑하고 멋있는 청년이었던 유진이는 26세 되던 해 여름, 갑자기 쓰러져 코마 상태에 빠진 뒤 19일 만에 병명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재혼한 후 낳은 둘째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은 것은 이때 즈음이었다고 한다. 열 두살이 되도록 아이는 엄마의 지시를 이해하거나 따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건너가 특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이미 초등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겼고 중학교도 1년을 다니다가 쫓겨난, 사면초가의 상태였다.

 

김한길 이민아 이혼사유

재정 상태가 좋지 않던 하와이 크리스찬 스쿨은 개인적인 관리가 필요한 둘째 아들을 받아주는 대신 그녀가 상근 보조교사로 일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엄마의 정성이 통했는지 1년이 흐르자 둘째의 자폐 증세가 기적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폐증은 불치병에 가까워 회복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둘째 아이는 이제 운전도 하고 일반적인 생활도 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김한길 이민아 이혼사유

하지만 이민아에게는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망막박리현상이 일어나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수술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이민아는 물론 이어령 교수 부부도 절망에 빠졌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자 무신론자, 이성주의자임을 자처하던 70대 학자, 이어령은 2007년 개신교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어령은 자신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한길 이민아 이혼사유

이민아 변호사는 망막박리 7개월 만에 찢어진 망막이 다시 붙는 기적을 경험했으나 다시 앞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찾아갔을 때 백내장 진단을 받고 현재는 수술한 후 양쪽 눈 시력을 모두 회복했다. 

김한길 전처 이민아

하지만, 2004년 두 번의 이혼, 아들 잃고, 끈질긴 암과의 사투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한길 재혼 최명길 "러브스토리"

최명길 몸매


1995322일 소설가이자 당시 연예정보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김한길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각종 정당 및 정치 행사에 자주 참석하고, 이 때문에 정계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가끔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최명길 본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편이며 정치에 관심은 없는 모양이다. 참고로 최명길은 김한길보다 10살 연하라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어마어마한 미인이었다. 보면 심장이 멎을 정도로 거의 김태희급이었다. 그래서 김한길 도둑놈이란 말이 유행이 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최명길 몸매

최명길 몸매


첫 데이트에는 김한길이 뽀뽀나 하자 등등 강하게 어필하여 최명길의 맘을 잡았고 그렇게 적극적인 대시로 결혼까지 성공을 하였다고 한다. 황신혜는 언니 최명길이 김한길과 전화만 하면 목소리가 완전 바뀌어 좀 웃겼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렇게 두사람은 결혼 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최명길 몸매

최명길 몸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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